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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2

2013. 3. 5. 03:01 | Posted by 이기님

하엘님 리퀘 SS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코테츠가 히어로를 은퇴하고 버나비 역시 스스로의 삶을 살기위해 히어로를 은퇴하여 골든타운에 마련 된 집으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버나비의 짐이라곤 조금의 옷가지와 안경, 사진, 노트북, 그리고 부모님이 주신 작은 로봇 장난감이 전부인 탓에 정리를 하기위해 박스 여러개를 구해왔는데 짐을 챙겨보니 박스는 써보지도 못하고 트렁크 하나만 손에 남아 쓰게 웃었다.

 

한달 전 코테츠가 집을 정리 하는걸 도왔을 때엔 박스가 모자라서 고생했는데 자신은 고작 트렁크 하나 뿐이다. 그리고 그게 자신의 자신의 가치정도를 드러내는 것 같아 버나비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목적도, 목표도 잃어버린 버나비의 삶은 고작 트렁크 하나일 뿐이었다.


땀 흘릴 것도 없었지만, 정리를 마쳤으니 씻어야 겠다 싶어 아끼는 가죽 부츠의 끈을 성의없이 벗어 던지고 맨발로 샤워실로 향했다. 적당히 걸으면서 허리의 벨트를 풀고 라이더 자켓을 벗어 바닥에 던진다. 어차피 이젠 찾아올 사람도 없고 시간에 쫓길일도 없으니 조금 귀찮아졌다. 짐을 정리해 안그래도 휑했던 방 안은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아서 버나비의 무력감을 부추겼다. 안경까지 샤워실의 앞에 벗어두고 샤워실로 들어선다. 따뜻한 물로 씻고.. 조금 쉬어야겠다.

 

 

 

샤워실에서 씻고 나와 맨몸으로 침대에 기어들어간 버나비는 앞으로 자신이 할 일에 대해 고민하기로 했다. 맨 몸에 닿는 이불의 감촉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워야 하는데, 막상 내일에 대한 긴장감이 사라지자 아무런 감흥도 와닿지 않았다. 버나비는 이불을 몸에 둘둘 감아 두르고 얼굴만 빠끔히 내밀고 늘어져 누웠다. 내일은 무얼할까. 짐을 챙겼으니 어디론가 가야할텐데 특별히 생각나는 곳이 없었다. 짐을 챙기는 행위 자체도 코테츠가 은퇴를 하고 짐을 싸는걸 도왔기 때문에 따라해본 것 뿐이었다. 코테츠는 버나비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신보다 사람다운 사람이었고 그것을 넘어서 그는 자신의 인생 노선을 송두리채로 흔들어 바꾸어 놓은 사람이었기에 그를 따라하면 무언가 다른 실마리가 잡힐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다.

 

'여행.. 이나 가볼까.'

 

히어로를 하면서는 복수에 대한 목표가 휴식이라곤 생각해본 적 없다. 버나비의 이상적인 휴식은 단기간에 효과적으로 피로를 풀 수 있는 행위였고 가끔 정말 답답할 때면 자신이 아닌척 변변찮은 변장이랍시고하고 나가 영화를 보는 것 정도가 다였다. 그래, 생각난김에 내일은 영화를 볼까. 짐을 다 챙겨 놓은 상황에서 생각할만한 내일은 아니었지만 딱히 생각나는게 없었다. 내일 영화를 보고나선 무얼하지? 미용실에가서 머리를하고, 늘어지게 낮잠을자고, 좋아하는 식당에가서 밥을 먹고, 그리고... 그리고?


버나비는 발작적으로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막 씻고 나와 셋팅되지 않은 머리카락이 버나비의 격한 움직임에 나풀나풀 흔들리며 눈 앞으로 흘러내렸다. 버나비는 시야를 가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새삼 자신의 방안을 둘러 보았다. 자신의 삶은 절반이 거짓이다. 자신이 살았다고 생각한 삶의 대부분은 알버트 마베릭에 의해 조작당한 것이었고, 알버트 마베릭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 집 역시 히어로로 데뷔하면서 알버트 마베릭이 구해 준 곳이었지만 이 집에 그의 손이 닿았던 곳이란 것과는 별개로 소중한 기억들이 남아버려 처분할 수 없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말은 곧 마베릭의 흔적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 역시 이루지 못할 것이란 말이기도 했다.

 

 

* * *

 

 

담배에 불을 붙이는 소리는 어쩐지 빗소리와 비슷하다. 버나비는 그렇게 생각하며 청각을 곤두 세운채 등을 더욱 벽에 밀착시켰다. 봄비의 물기를 머금은 흙냄새는 따뜻하고 푸근한 냄새가 난다. 이 땅에서 나고 자라면 다들 코테츠씨처럼 되는걸까. 되도 않는 생각을하며 부츠 밑창으로 괜히 젖은 흙을 꾹꾹 눌러보았다. 아직은 바람이 서늘해 해가 따뜻해도 추운 날씨였는데도 물안개 사이로 동네 이곳저곳에는 벽을 타고 올라온 덩쿨이 채 다 펴지지 못한 잎을 똬리모양으로 피워내고 있었고 그 윗담장을 타고 개나리 가지가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는 아니지만 부슬부슬 쏟아지는 봄비는 어제 오후부터 계속되고 있었다. 아끼는 자켓은 가죽이기 때문에 비를 맞으면 금새 상한다. 우산을 쓰면 좋겠지만 그랬다간 이 담벼락 너머의 사람에게 자신이 있는 걸 들키게 될 것이 뻔해 조용히 벽에 가까이 밀착해 처마밑에서 비를 피하는게 전부였다. 그리고 벽에 바짝 붙어야 조금 더 소리가 잘 들릴 것이었다.

 

"카에데, 상추 다땄니?"

 

상냥한 목소리가 들린다.

 

"몇 개만 더 따려고."
"너무 많이 따면 남는다. 먹을만큼만 따, 먹을만큼만."

 

버나비는 숨을 죽였다. 등지고 있어 눈으로 보지 못하는 대신 청각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눈을 감았다. 가벼운 발소리가 젖은 흙을 사붓사붓 밟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멈추자 곧이어 잎사귀의 줄기가 토독 토독 끊어지는 소리가 난다. 잎사귀를 헤치고 여린 잎을 뜯는 햐얗고 작은 손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어쩐지 눈앞에 그려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치직, 하는 소리가 이어진다. 그 소리는 어쩐지 빗소리와 비슷했다. 곧 매케한 냄새가 물안개속을 헤매며 퍼져나왔다. 일반적으로 숨을 쉬는 소리가 아닌 인위적으로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리고 천천히, 길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담배 좀 안피우면 안돼?"

 

못 본 사이에 코테츠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버나비는 조용히 눈을 감은채 그 모습을 상상했다. 사복을 입은 어린 딸의 아버지는 어린딸의 눈치를 보며 머쓱하게 웃고 있을 것이다. 그 커다란 덩치로 어깨를 조금 움츠리고 엄살을 부리면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겠지. 남자다운 커다란 손이 얇은 담배개피를 손가락사이에 끼우고 조금이나마 어린 딸에게 연기가 덜 가도록 한쪽으로 뻗어있을테다.

 

"요즘들어 담배피우는게 늘었잖아."

 

토독, 하고 다시 잎사귀의 줄기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사붓사붓 흙밟는 소리가 들리고  동시에 좀 더 묵직한 무게로 흙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린다. 머쓱한 코테츠가 괜시리 발로 흙바닥을 긁고 있는지도 모른다. 버나비는 조용히 눈을 떴다. 담벼락을 등지고 기댔던 몸을 천천히 세워 바로 섰다.

 

"이크, 할머니한텐 비밀이다. 한 대만 피운걸로 해주라, 응?"

 

코테츠는 감이 좋지만, 동시에 눈치가 없으니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부츠가 물에 젖은 흙을 밟자 질척이는 소리가 조금 났지만 빗소리에 묻혀 티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처마 밖으로 나서자 우산을 쓰지 못한 버나비의 위로 부슬비가 반갑게 감싸안은다. 머리카락을 적시고, 물을 먹은 머리카락은 버나비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버나비의 속눈썹에도 물방울이 고였다 볼을타고 떨어졌다.

 

"그러니까 담배를 피우지 말라니까."
"어구, 우리 귀여운 카에데가 하는 말인데 아빠가 들어줘야지. 알았어, 알았어."
"그래놓고 다시 몰래 피울거면서!"

 

왜 이곳에 왔을까. 버나비는 자문했다. 확인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온전히 갖지 못한 기억의 빈자리에 방황하는 사이 코테츠 역시 자신의 빈자리에 외로워하길 바랐던것 같기도 하고, 그러지 않길 바란것 같기도 하다. 물이 맺힌 안경 덕분에 시야가 부옇게 번졌다 물방울이 흘러내려 맑아지기를 반복한다.


히어로를 은퇴하고도 코테츠는 꾸준히 버나비에게 연락을 해왔다. 버나비는 처음엔 그의 연락을 기꺼워했으나 날이 갈 수록 그의 문자나 전화에 응답을 하는 횟 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의 문자에 답장 할 말이 없어서. 버나비는 걸음을 내딛으며 핸드폰을 켰다. 문자사서함을 연다.

 

답장을 보내지 못했던 문자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문자에 다다르자 버나비는 답장 버튼을 눌렀다. 걸음을 멈추지 않은 덕에 점점 티격대는 부녀의 목소리가 멀어져 이제는 목소리만 얼핏 들릴 뿐 말하는 내용은 구분할 수 없었다. 빗소리만 부슬부슬 버나비의 세상을 가득 채웠다. 꾹꾹 키판을 눌러 내용을 완성한다. 보내기 버튼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코테츠는 카에데와 티격태격하던 것을 멈추고 문득 마당의 한 켠 입구쪽 담벼락을 바라보았다. 어제 오후 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빗방울이 점차 두꺼워지고 있었다. 봄비치고는 비가 길다.

 

"아빠?"
"어..? 어..아냐. 아빠가 잘못들었나봐."

 

담벼락에서 시선을 뗀 코테츠는 카에데가 비에 맞지 않도록 우산을 기울여주었다. 카에데는 여리고 맛있는 잎으로 골라 딴 상추를 의기양양하게 코테츠에게 보이며 웃었다. 성큼성큼 마루로 들어서 신발을 벗는 카에데를 흐뭇하게 보며 뒤늦게 우산을 접던 코테츠는 문득 오른쪽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우산을 접어 한켠에 세워두고 핸드폰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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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엘님 리퀘였던 우울증에 걸려서 자살을 생각하는 바니 혹은 키워드로 떠난 자리, 빗소리, 손가락, 재떨이 중 적당히 골라 썼습니다.

어...제가요...어....... 원래 이거저거 생각은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잠이와서.........
졸려서 다 빼먹고 쓰고 싶은 장면만...어..........OTL....
재밌는 키워드랑 시츄로 리퀘해주셨는데 이런걸로 드려서 죄송합니다. ㅜ0ㅜ.. 하엘님 사....사......사탕드릴까요?!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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